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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시리즈(여자의 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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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恨(한)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침략하여 금수강산을 수탈하던 시절, 어느 마을에 머슴살이하던 총각이 장가를 갔으나 먹고 살아갈 길이 아득하였다.
병든 홀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데, 일제의 수탈이 심하던 때라 머슴살이도 쉽지 않았다.
가난한 농부들이 만주로 크나 큰 희망을 가지고 이주를 하던 때라, 남편도 결심을 하고 아내를 불러 놓고 말했다.

"머슴살이는 하는 나에게 시집을 와서 고생이 많겠구려. 대대로 머슴을 살아온 집안이라 땅 한떼기 없고 이렇게 또 살아본들 우리식구 풀칠은 하겠지만, 자식들이 태어나면 또다시 머슴살이를 해야하니 공부인들 제대로 시킬 수 있겠습니까? 머슴살이에 한이 맺혔습니다. 만주로 가면 빈 땅이 많다하니 한 10년만 고생을 하면 몇 마지기 땅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신혼의 젊은 아내를 가슴이 철렁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을 집을 떠난 다는 것이다.
"여보!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나도 삯바느질을 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돈을 모을 수 있겠지요."
"나를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태어날 자식을 생각해야지요. 자식놈까지도 머슴살이를 시킬 수는 없지요. 진작 떠나고 싶었으나 병든 어머님을 두고 갈 수가 없었는데, 이제 당신이 어머니를 좀 돌봐 주시오. 내가 반드시 성공을 해서 남은 여생을 편안히 살고 자식들 공부도 시켜서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삽시다."
남편은 의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하고 있어, 아내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10년 후 팔월 대보름날 내가 돌아오리다. 어머니는 오래 사시지 못할 겁니다. 당신혼자 고생이 되더라도 참고 기다렸다가 읍내에 있는 역으로 오시오.
만약 당신이 참기 어려우며 어머니 돌아가신 후 당신의 길을 가도 원망을 하지 않겠소. 나는 이 마을 오지 않으리다. 당신이 없는 마을을 생각하기도 싫소. 이 마을에서는 비록 내가 돈을 벌어왔다 해도 머슴의 신분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같이 열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젊은 아내는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10년 후 정월 대보름날 밤 열차를 꼭 타도록 하시오. 만약 당신이 오지 않으면 당신의 길을 간 줄로 생각하고 나 혼자 떠나겠소." 하고 당부를 했다.
아내는 남편의 뜻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어머님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객지에서 몸조심하고 건강하십시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남편은 병든 어머니와 젊은 아내를 담겨두고 돈을 벌기 위하여 만주로 떠났다.

세월은 流水(유수)라 했다.
어느 듯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팔월의 보름달이 둥글게 가득 찼다. 그동안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는 혼자서 품팔이와 삯바느질로 생활을 하다가 이제 남편을 만나러 역으로 가야했다.
10년 세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외롭고 긴 밤을 오직 남편만 생각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장롱 속에 고이 감춰 두었던, 시집 올 때 입었던 값비싼 옷을 입고 나루터를 건널 때 필요한 배 삯을 가지고 아침에 길을 나섰다.
마을에서 역까지는 백리길이 넘어 서둘러 길을 떠난 것이다.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황혼이 되어서야 아내는 나루터에 다다랐다.
강물이 저녁노을에 붉게 타고 있었다. 나루터를 다가가자 사공이 배를 강가에 붙들어 매어 놓고 노를 짊어지고 집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여보시오, 사공어른 나를 좀 건너 주시오." 하고 말했다.
"오늘은 일이 끝났으니 내일 아침에 오시오."
"안 됩니다. 나는 지금 강을 건너야 남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꼭 좀 나루를 건너달라고 부탁을 했다.
"꼭 강을 건너고 싶으면 10사람 몫의 배 삯을 내시오. 이 배는 10명이 타지 않으면 건너지 않는데 당신의 사정이 급하다니 내가 한번 건네주리다."
아내의 수중에는 한 사람의 배 삯 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애걸복걸을 했으나, 사공은 "나도 처자식을 데리고 먹고살아야 합니다. 10사람의 배 삯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고 집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다.

아내는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시주승이 공양미를 어께에 짊어지고 지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아내는 스님을 붙잡고 사정을 했다.
"스님! 나는 10년 만에 남편을 만나러 갑니다. 지금 강을 건너지 못하면 남편과는 영영 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배 삯이 모자라니 스님의 공양미를 저를 주시면 제가 남편을 만나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님은, "허 그것 참 딱하게 되었군요. 이 공양미는 내가 하루종일 마을마다 다니며 거둔 것인데, 우리 절의 스님들이 먹고 살아야 합니다. 꼭 사정이 그러면 옷이라도 벗어주고 건너지요."
그러고는 남의 이야기라는 듯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뱃사공은, "그 옷이 참 좋군요. 내 마누라는 50살이 되도록 그런 옷을 입어보지 못했습니다."하고 옷을 탐낸다.
아내는 남편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옷을 벗어주고 강을 건넜다.

이미 어둠이 내렸으나 산길은 보름달이 솟아올라 길을 비추고 있었다.
아내는 허겁지겁 산길을 오르는데 어디서 짐승 나올지, 산적이 나올지 걱정이 되지만 오직 남편을 만나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오르고 있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나무아래서 불쑥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가진 거 모두 다 내 놓아라." 산적을 산이 떠나도록 고함을 질렀다.
아내는 벌벌 떨며 얼른 품속에 있던 배 삯을 주면서 말했다.
"가진 거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오."
돈을 받아 챙긴 산적은 달밤에 속옷만 입고 산중에 혼자 온 여자를 그냥 보내 줄 리가 없다. 메기 침을 흘리며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10년 만에 남편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당신이 나를 겁탈하면 나는 남편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나를 보내 주십시오."
사정을 했으나 이미 욕망에 불이 붙은 산적이 놓아 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