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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시체와 영동고속도로

IP : b597ef234705c39 날짜 : 조회 : 11130 본문+댓글추천 : 0



여자 시체와 영동고속도로


지금부터 10여년 전 내가 20살 때의 일이다.

때는 여름방학. 장마의 영향인지 그날도 하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별 할 일이 없던 나는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있는데 이제 막 낚시에 맛을 들인 친구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응 난데 손이 근질거려서 못 살겠다. 낚시나 가자."

"어디로 갈라꼬?"

"우리가 늘 가던 데로 가야지."

친구 녀석이 말하는 곳은 수원 근교의 신대 저수지다. 지금은 영동고속도로가 바로 옆으로 나 있는 신대지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자주 다니던 저수지며, 나에게는 낚시 훈련소 인 곳이기도 하다.

어쨌던 이렇게 의기투합을 한 후 나는 누나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친구와 함께 출조를 했다. 저수지에 도착할 무렵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으나, 하늘은 잔뜩 흐려있다. 얼른 낚시를 하고 싶은 마음에 부랴부랴 텐트를 친 후 낚싯대를 번개같이 펴고 입질을 기다렸다. 그러나 낚시를 한지 한 시간…, 두 시간…. 말 그대로 찌는 말뚝이다.

"누나들과 조카까지 데리고 왔는데,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 때까지 우리가 낚은 것이라고는 겨우 피라미 몇 마리가 전부였다. '밤에는 입질이 있겠지' 하는 위안도 했지만 역시나 결과는 '꽝'. 아침에 철수하자는 친구녀석의 말에,

"한 시간만 더하자. 여기는 우리한테 꽝은 없는 곳이잖아." 하면서 친구녀석을 달래고 있는데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까지 우리의 애만 태우던 찌가 움직익 시작한다. 입질이 시작된 것이다. 그후로 정신없이 올라오는 찌에 우리 둘은 그야말로 손맛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 때 누나 왈,

"야, 집에 언제 갈거야?"

"응, 이제 입질 시작됐는데, 한 시간만 더하고 가자." 하며 나는 누나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하고 계속 낚시를 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다시 누나의 목소리가 커진다.

"야! 집에 안 갈 거야!"

아차 너무 늦었구나! 그래 모두 철수~.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쌌다. 그런데 당시 우리들에기는 자가용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는데, 문제는 저수지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꽤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산 하나를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산을 질러가자는 것.

지금은 영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지만 당시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공사 현장을 질러 가기로 했다.

시간은 밤 10시 30분. 그 때까지도 계속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위는 깜깜했다. 아무도 없는 공사현장을 지나려니까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친구와 난 장난끼가 발동했다. 서로 귀신얘기를 하나씩 하자는 것. 그렇게 친구와 나는 서로 알고 있는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두컴컴한 공사길 한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난다.

"여기는 차가 안 다니는 곳인데, 이상하다…."

친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가까이 다가온 그 자동차는 전조등은 물론이고 미등과 실내등까지 모두 끈 후 그 비포장길을 마치 질주하듯 지나갔다. 그래도 우리는 '참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이 시간에 여긴 웬일로…' 하며 별 생각없이 계속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한 5분 후.

우리가 걸어가는 쪽으로 20m 쯤 전방에 하얀 물체가 보인다.

'헉! 저게 뭐냐?' 속으로 생각하여 천천히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그 하얀 물체의 정체는 사람. 그것도 여자였다.

"참 이상하네. 아무도 없는 도로 공사길 옆에 웬 여자가 혼자 있네…, 그것도 비오는 밤에…."

친구녀석이 중얼거렸다.

당시 나는 일행의 맨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나 역시 궁금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그 여자에게 가까이 가보려고 발을 옮겼다. 그런데 그 순간, '아! 미친 여자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흙탕길에 그것도 한밤중에 여자 혼자 앉아있는 걸 상상해 보시라. 그건 분명 미친 여자, 아니면 실성한 여자가 뻔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을 하려는 나는 온몸에 한기를 느끼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져 버린다. 일행들은 모두 그 여자를 피해 멀찌감치 돌아서 지나고, 문득 내 머리에 스치는 생각은 '아! 죽은 여자다' 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자리를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 곁을 지난 후 다시 고개를 돌리려 해도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당시 내가 고개를 돌리면 꼭 돌리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한 20m 정도 간 후 용기를 내서 고개를 돌리니 그 여자는 그 자세로 그대로 있었다.

"야, 죽은 여자 같애" 하고 친구와 같이 용기를 내서 다시 가보려고 했지만 그 때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누나랑 조카가 너무 무서워 하는 바람에 그 길로 우리 일행은 뛰다시피 큰 길 가로 나와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탄 후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해봤다. 그런데,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한밤중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그것도 비가 와서 진흙투성이 길에 왜 여자 혼자 앉아있을까? 둘째, 공사길 초입에 들어섰을 때, 우리가 본 전조등과 미등까지 다 끄고 사라졌던 그 자가용의 정체는 또 뭘까? 셋째, 사람은 일반적으로 누가 다가가서 쳐다보면 마주 보거나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이 정상인데, 왜 그 여자는 내 얼굴이 30cm까지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아무 움직임 없이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공사길은 도로의 양 끝이 턱이 져 있어 그런 상태로 앉아있으면 누구라도 다리를 쭉 펴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여자는 遁자로 앉아서 무릅 관절이 그대로 펴져 있었다는 점.

아무튼 친구와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그 공사현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음날 친구와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어제 그 여자를 봤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여자가 없었다.

"우리가 모두 헛 것을 본 걸까?"

"아니 미친 여자였을 거야."

우리는 이렇게 단정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 일은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고, 그 일주일 후.

친구와 나는 다시 낚시를 하러 신대지로 향했다.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는 우리 귀에 공사장 인부의 말 소리가 들려왔다.

"아 참. 이보게, 지난 주에 저기 공사 길에서 여자 한 명이 죽은 채 발견됐네 그려."

그 말을 들은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바라본 후 아무 말 없이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