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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의 실제 이야기

IP : 3f991416a74013d 날짜 : 조회 : 5662 본문+댓글추천 : 6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어린아이가 장정(壯丁)을 이길 수는 없듯

전쟁이 벌어지면 정신적 강군이 아니라 무력적 강군이 승리한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484~425)의 『페르시아 전쟁사』는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사는 BC490년부터 50년 동안 벌어진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연합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기술한 책이다.

이 페르시아 전쟁사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스파르타군이 주축이 된 테르모필레 전투(Battle of Thermopylae)를 묘사한 부분이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는 그리스 중부 라미아(Lamia)의 남쪽에 있는 좁은 협곡길이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ēs) 황제는 BC481년에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러자 스파르타를 비롯한 약 30여 개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연합하여 페르시아 군대에 대항하고 나섰다.

그리스 연합군은 진격해 오는 페르시아군에 맞서기 위해

육군과 해군으로 임무를 분담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가장 먼저 막을 곳은 그리스 북부의 테르모필레(Thermopyles)였다.

페르시아 군대가 그리스를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그 테르모필레 요새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은 300명의 병력을 포함해

겨우 7천 여명의 연합군을 이끌고 있었던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Leonidas)였다.

7천 명의 방어 병력으로 170만 명의 페르시아 침략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 전쟁은 누가 봐도 패배가 뻔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테르모필레는 쉽게 정복되지 않았다.

테르모필레는 뜨거운 문이라는 이름처럼 지형이 매우 좁아 페르시아 군대가 전차를 움직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언덕에서 퍼붓는 스파르타군의 공격에 페르시아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다급해진 크세르크세스는 정예부대를 투입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 왕과 병사들은 결국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원이 테르모필레를 사수하다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테르모필레 전투는 그리스 본토 군으로 하여금 재정비할 시간을 주고 해전을 준비할 여유를 줌으로써 결국

그리스군이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테르모필레 전(戰)에서의 전사자들은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런 승전의 중심에는 스파르타인들이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훈련되었던 사람들이다. .

스파르타인들은 남자아이를 낳으면 

부족의 장로에게 데려가서 레스케(lesche)라 불리는 성소(聖所)에서 검사를 받고 건강하면 돌려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아이는 타이게토스(Taigetos) 산록의 깊은 구렁에 던져졌다.

또 모든 스파르타 사내아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아고게(Agoge)라는 병영학교에들어가 그곳에서 19세까지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았다.

체력훈련, 춤과 음악, 문학과 철학도 함께 배우고, 채찍 맞고 견디기 같은 엽기적인 인내심 훈련도 받았다.

그런 훈련과정을 거쳐 19세부터 전투에 투입되며 60세까지는 예비군이든 현역이든 실제 전쟁에 참가했다.

스파르타인들의 소망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스파르타 남성들은 눈물을 보여서도, 전장에서 물러나서도 안 되며 항복해서는 더욱 안 된다. 

 

테르모필레 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던 레오니다스 왕의 한 마디는 스파르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대변한다.

“항복하라. 그러면 너의 나라를 그냥 다스리게 해 주마”라는 말을 전하러 온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의 사자를

우물에 처박아 죽인 후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정예부대 300명을 이끌고 전선으로 떠났다.

왕비는 남편을 떠나보내면서도 슬픈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이렇게 말했다.

“꼭 돌아오세요. 살아서든 죽어서든.”

레오니다스 왕은 그 말을 받아 왕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좋은 남자 만나서 다시 아들을 낳아라.

그래야만 스파르타를 지키는 군인이 한 사람 더 생길 것 아닌가.”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죽었던 사람들이 바로 스파르타인들이었다.

“꼭 돌아오세요. 살아서든 죽어서든.”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좋은 남자 만나서 다시 아들을 낳아라.

그래야만 스파르타를 지키는 군인이 한 사람 더 생길 것 아닌가.”

전장으로 떠나는 남편(왕)과 떠나보내는 아내(왕비)와의 이 대화는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진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총칼로 싸우는 백병전이 아니라 탱크와 미사일, 핵과 같은 무기로 싸우는 첨단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 임하는 정부와 국민들의 각오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야 할것이다.

(옮긴 글)

 


2등! IP : f13cfeed3d74430
한남동의 누구도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돌아와라.살아서든 죽어서든
추천 0

3등! IP : a0b8ab2068594a1
북한 김일성이 일으킨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때 포항에 주둔한 10대 학도병들이 북한군에 의해 거의 다 전사한 영화가 생각나네요.
300 스파르타 군인들처럼 우리는 이 분들 희생덕에 UN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북한군을 몰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북한의 김씨왕조는 여전히 호의호식하하고 있으니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께 죄송할 뿐입니다.
요 돼지 3부자, 김일성이, 김정일이, 김정은이는 중국에서도 '진쌈빵'이라 하던가 아뭏튼 뚱땡이 3부자라고 불리며 놀림감이라네요.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