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검석"이 생소하다구요??
"임검석"은...
일제는 제작하려는 영화의 검열 그리고 제작 이후의 검열뿐만 아니라 극장에서까지 민심의 동태를 살펴야 했고
그것이 극장의 맨 끝자리에 있던 소위 "임검석"이라는 좌석이 있었습니다.
70년대 극장에서 "쑈"가 한찬 무르익어 출연자나 관객들이 흥에겨워 춤을 추고 있을때
"풍기물란"으로 판단한 "임검석"에 경찰관이 그 "쑈"를 중지 시킨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임검"이란 말은 극장에만 있지 않고 "여관"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으니.
타지에서 올라온 여관 투숙객들이나 여행객들이 고단한 육신을 눕히고 눈을 붙일 쯤
정.사복 "경찰관"들이 여관 출입시 작성한 "숙박계"를 들고 여관 주인을 대동하여 방마다
일일이 대조하던 그 "인권유린"?의 현장을 연배가 있으신 월님들은 기억하시지요??
1922년 "일제강점기"시대 영화에 대한 검열이 시작된이래 "유신시절" "풍기문란"의 이유로 존재했던 "임검석"
또는 여관 "투숙객" 그리고 "여행자"들의 신원과 "불순분자"를 찾는다는 이유로 "임검"을 실시했습니다...
늘 가족과 함께 행복하십시요...씨-__^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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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보시질 않아 제가 먼저 간을 보았습니다.
황당했던 '여관.여인숙'의 임검.
숙박부에 주소와 이름을 허위로 기재했던 씁쓰레한 기억 !
그다지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야간 열차와 팔뚝에 새겨 주었던 문신과 야간통금 !
극장 제일 뒤쪽 높은 자리에 있는것이 임검석.....
여관방에 자는데 노크 임검 나와습니다.ㅎㅎㅎㅎㅎㅎ
잘 지내시지예.^^*
임검석? 그러한 거였군요
선배님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셨네요
지금은 상상도 못할.....
감사합니다^^
PS ~ 권형님에 심벌마크인 씨___익이라는
이모티콘이 웃는 모습에서 얼마전
부터 윙크로 바뀌였네요~
보기만 해도 기분좋아지는 마크입니다
그 때 그시절을 살아오셨다는게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ㅎㅎ
영화틀어줘 외삼춘 말 믿고 광목미틍로 기어들어가 공짜구경할려다가 기도에게 걸려 쫓겨난 기억은 납니다
어릴 때 저희동네에 있는 극장(마포의 마포극장,경보극장)가서 동시상영은 본것은 기억나는데 임검석은 기억이 가물합니다
60년대에 초등학교 중학교지내신 분들하고
70년초반, 70년후반하고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70년도에 초등학교 입학했는데
오전반, 오후반,매주 수요일 분식의 날, 보리삽30%검사 이런게 있었는데
집사람은 75년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구요 제가 겪은 것 얘기하면 세대차이 느낍니다
마포가 고향이라 어릴 때 전차탄 이야기하면 집사람은 전차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달고나,볶기 이런 것은 알더군요)
고등학교때 선생님이 45년생인데 자기 고등학교시절(60년대초반)
소풍갈 때 제일 부자가 삶은 계란 싸왔다고 하더군요
저희 고등학교때는 도시락 열면 밥 위에 계란후라이 덮어싸오는 것은 일반이었었는데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보리고개가 있었던 격동의 60년대, 산업화시작의 70년초반, 70년중후한 분명 다른 것 같습니다
옛추억에 젖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밤 집에서 간만에 애들과 마눌이랑 단란한 고기 파티를 즐기던중 좀 과한 음주로 인해 출근도 쪼매 늦었읍니다.
임검석이 그거였군요!!
,,임검,,이란 말은 많이들었는데~~~
극장에도 이런게 있었군요^^
권형 선생님 덕에 많은걸 배웁니다..
저때문에 글을 올려 주셨는데 넘 늦게 봐서
두손 모아 사죄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그리고 권형선생님과 울 월척 선후배님 ~~
사랑 합니데이~~♥♥♥♥♥♥♥♥♥♥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꼭 제일 뒷자리에 앉아 도시락에 계란후라이 싸가지고 왔었습니다.
또 요 친구들이 청소 안하고 도망 많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