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에 말뚝박기
추석에 성묘를 지내기도 하지만, 5대 봉사(奉祀)인 제사(祭祀)가 끝난 묘지는 늦가을에 시사(時祀)를 지낸다. 묘사(墓祀)라고도 했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11월에 날을 잡아 시사를 지내고, 음식은 동네 어른들에게 나누어주거나 구경 온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데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는다.
대개 시사를 지내는 날자가 정해져 있어 동네 어른들이 기억하여 내일은 어디에 있는 산소에 시사를 지낸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푸짐하게 동네에 봉석을 돌리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많이 나누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지못해 음식을 나누어주고 도로 짊어지고 가기도 했다.
그 묘사떡 얻어먹는 것이 해가 가다 보면 어디의 묘지는 인심이 후하고 어디의 묘지는 인심이 나쁘다는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대개 묘지의 후손들이 가까이 있기보다는 멀리서 묘사를 지내러 오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과 잘 사귀어야만 묘지가 편안하다.
그래서 음식을 돌리며 묘지를 잘 돌봐달라고 동네 어른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다.
인심이 나쁜 묘지에 오늘 묘사를 지내는 날이다.
마을에서 조끔 떨어져 학교로 가는 길옆에 있어 매일 학교를 오.갈 때에 가끔 올라가 미끄럼도 타고 놀던 묘지다.
동네 청년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학교로 갈 때에 저학년을 먼저 보내고 6학년 3명을 남으라고 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 모두 묘지위로 올라가 말뚝을 박으라고 했다.
나는 묘지 꼭대기에, 한 명은 혼유석(상석) 위에, 또 한 명은 그 혼유석 앞 돗자리 깔고 절하는 곳에.....
3놈이 동시에 엉덩이를 까고 뱃속에 들어있는 필요 없는 것들이 모두 쏟아 부었다. 많기도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우리는 이걸 말뚝박기라 불렀다.
하교 길에 아이들을 불러 놓고 오늘 그 묘지에 가면 묘사떡을 많이 줄테니 우리 몫은 남겨서 가지고 오고, 절대로 누가 그랬는지 말하면 안 된다고 엄명을 놓고, 우리는 차마 갈 수가 없어 묘지가 내려다보이는 뒷산에 올라가 사태를 지켜보았다.
묘사를 지내러 온 사람들이 기가 막혔다.
잔디에 묻은 오물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동네에 가서 삽을 빌려서 다 치우고 묘사를 지냈다.
"여기에 똥을 눈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이미 나에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모두가 모른다고 했다.
한사람이 떡을 한 주먹 쥐고,
"말하는 사람은 이 떡을 주마."
그 때에 손을 번쩍 든 여자아이가 있었으니, 나의 여동생이다.
"우리 오빠가 그랬어요."
초등학교 2학년인 내 여동생이 그만 떡에 눈이 어두워 오빠를 팔아 넘겼다.
일행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청주 한 병과 안주, 떡을 봉석에 싸서 여동생을 앞세워 우리 집으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직감으로 모든 것이 탄로가 난 것을 알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어 할머니가 우리가 있는 뒷산을 향하여 나를 불렀지만, 우리는 겁에 질려 산 속에 숨어서 해가 넘어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묘사꾼들은 돌아가고 밤이 깊어도 우리는 떨며 산 속에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을 용서 할테니 제발 집으로 오너라."
어머니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집으로 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약속과 달리 우리는 아버지에게 종아리 핏발이 서도록 회초리를 맞고 기나긴 훈시를 듣고서 용서받았다.
그 후로 그 묘지는 묘사떡을 후하게 주었다.
아이들이 모두가 나의 덕택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나는 그 묘지 옆으로 지나가지도 않았고, 묘사를 지내는 날이면 얼씬도 하지 못했다.
철부지 시절!
장난기 심했던 내가 저질렀던 추억이다.
올해 그 묘지에 묘사떡이나 얻어 먹으로 갈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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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어뱅이님...
종아리에 핏발이 서도록 안맞을래야 안맞을 수 없었겠습니다.
흐미,다른사람 조상님 묘에 똥,오줌 말뚝을 박았으니...
요즘도 떡 생각나면 그러시는건 아닌지...ㅋㅋㅋ
"묘지에 말뚝박기" 편 재밌게 읽었습니다.
시사 지낼때 시사 봉두 받을라고..
열심히 다닌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묘지에 응가한건 넘 심햇네요..
안동 어르신들이 묘지 에 정성을 얼마나 들이는데요..
후후 추석 잘보내시고 건강 하세요..
그 날 동국의 친구분 만나셨는지요?
근데 고발한 여동생분은 그후로 어찌되셨는지요?^^*
2편으로다가 재밌게 말씀해 주실건데 물으시면 못 하시죠.
참 추석이 가까워 오면 별 희안한 추억들이 스치지요.
고향은 그리 멀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던 이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고 나면
찾고 싶지도 않은 곳이기도 하구요
찾아 봐야 이미 그리던 고향이 아니구요
오갈데 없는 이는 그 마저도 한스럽고요........
오죽 서글프면 저런 추억을 끄집어내셨을까?
죽으면 늙어야 되!
안 늙었으면 죽지 못 해!
그런대요 나는 기억이 없시요. 몰라유 아무 것도.
완전 범죄는 없나 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