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를 시작한지 어느덧 40년이 넘어 옛날 생각을 하며 글을 올립니다.
어렸을 적(1970년대 초중반) 서울 변두리인 사당동(지금은 아니지만...)에 살면서 낚시를 처음 배웠습니다.
당시 집 근처에는 한 3,000평 쯤되는 못이 있었는데 거기서 동네 어르신들로 부터 처음 낚시를 접하게 되었죠.
물론 통 대나무 낚시대에 줄은 무명줄, 찌는 나무가지, 추는 돌멩이, 바늘은 주운 것....
당시 기억으로 한나절 낚시하면 4-6치 붕어 몇 수는 잡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철없는 동네 꼬마의 호기심이려니 하시며 저를 지켜보시던 동네 할아버지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꾼(?) 기질을 알아보시고 낚시에 대해 하나 둘씩 알려주시더군요.
"꼬마야, 추가 너무 무거운면 붕어가 물어도 몰라. 가벼운 돌을 달려무나..."
"땅을 파면 지렁이가 나오는데 그게 최고의 미끼란다."
"에이, 지렁이를 징그럽게 어떻게 달아요?..."
이렇게 해서 낚시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던 차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부모님의 말씀!!
"우리 이사간다."
아~~ 이제 낚시는 다했구나...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발달했지만 70년대초 초등학교 5학년에겐 집근처에 낚시터가 없으면 낚시는 끝이죠?)
이렇게 해서 이사를 가고 몇달간은 낚시를 못했지요.
어린애들이야 금방 잊어먹지 않습니까?
저도 슬슬 낚시를 잊어가고 있었는데...
전학간 학교에서 사귄 친구가 하는 말...
"야 우리 한강에 수영가자"
"그래."
지금 생각하면 새로 이사간 집이 영동대교에서 2-3키로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영동대교 근처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낚시 하는 분들이 너무너무 많아서요.
친구와 수영 하는둥 마는둥...
"OO아, 나 집에 갈래"
"왜?"
"낚시대 가져와서 낚시할라고"
"너 낚시 잘해?"
"응, 도사야."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 낚시대 주세요."
엄마: 이사오면서 버렸는데...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못 쓰는 대나무 장대 하나 버리신거겠지요?)
나: 30분간 울음
엄마: 그만 그쳐라, 엄마가 낚시대 사줄께
나: '귀가 번쩍' "정말?"
그때 돈으로 3천원 정도를 주신다.
(이걸로 살 수 있을까? - 그때 생각)
(정말 큰 돈이었는데...- 지금 생각)
그 돈을 가지고 서울 남대문으로 직행
"남문낚시 (지금도 있나 모르겠네요?)에 가서 2칸 쯤 되는 대나무 낚시대와 받침대,
찌, 뒤꽂이, 대나무 살림통, 어망등을 사가지고 의기양양하게 귀가.
그날부터 방과후 영동대교로 직행하여 몇달간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었는데...
사당동 시절 만큼 조과가 신통치 못했죠.
이상하다.
진짜 낚시대에 줄에, 바늘에...
왜 안될까?
지금 생각하니 수십수백명이 북적이는데서 2.0대로 강낚시를 하니 당연히 꽝이겠지요?
그런데 옆에 아저씨를 보니 이상한 낚시를 하네?
낚시대는 없고 맥주깡통 같은거에 줄만 감아서 주먹만한 떡밥을 20-30m 던지고
한없이 기다리다 "딸랑 딸랑" 하면 줄 감고...
잡아올리면 대물...
방울낚시였지요.
옳거니 !!!
나도 당장 방울 낚시를 2조 구입
(사실 구입은 아니고 줄하고 멍턴구리 바늘만 사다 통조림 깡통 개조해서 만들었죠.)
이렇게 해서 초등학교 6학년때 벌써 잉어낚시에 입문하고...
이렇게 한 1년 잘 보내는데...
부모님 말씀 "우리 또 이사간다."
나: 우쒸, 이번에 정식으로 낚시대까지 장만했는데...
이사가 보니 걱정 붙들어 매도 되겠다.
한 눈에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니...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부모님 말씀
"이제 낚시 그만하고 공부 좀해라..."
그러나 이미 중증 환자가 되어버린 나는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지금 50-60대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그당시 초등학교를 다닐때
우체국 적금인가 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들었었지요.
초등학교 졸업후 6년간 부은 돈을 받으니 거금 "1만 7천원"
그걸 받은 날 어머니께 말씀도 안드리고 다시 남대문으로 직행.
돈이 여유가 있으니 고급 낚시대가 눈에 확들어온다.
오리엔X 에서 나온 안테나식 (요즘의 그라스대)낚시대다.
대나무 낚시대만 쓰던 분들이 처음 그라스대를 살 때의 감격은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모르실 거다.
또하나 눈에 확 들어오는 소품이 있다.
'간델라와 야광테이프'
이것만 있으면 밤에도 낚시할 수 있다...
그리고 낚시가방.
통 큰 나는 1만7천원이라는 거금을 탕진한다.
집에 온 나를 보시고 어머니는 웃지도 화내시지도 않으신다.
"중학교 졸업할 때 까지만이다..."
여의도에 살면서 방과후마다 낚시를 다녔다.
월척...
40cm급 백메기 (흰색의 메기인데 무척 귀한 것임)
2자급 잉어...
원없이 고기를 잡아봤다.
이렇게 서울 근교의 한강 낚시를 하다가 내 낚시 인생에 큰 전기가 찾아온다.
여의도 상가에 있는 체육사가 상도동의 한 낚시점(세기낚시에서 후에 우호낚시로 개명)과
공동으로 매주 일요일이나 토요일에 전세 버스를 내서 지방으로 출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당장 낚시점에 찾아갔다.
나: 아저씨 저도 따라 가고 싶은데요?
주인: 너 혼자?
나: 예
아저씨: ??? .... 안돼.
그런데 나중에 알았는데 그 아저씨 아들이 나하고 같은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다시 잘 말씀을 드리니 허락을 하신다.
회비는 어른의 1/3
난생 처음 관광버스를 타고 새벽낚시를 가는 설레임.
버스는 새벽 4시반 출발이고 통금이 있었으니 땡! 하면 나가야 한다.
장소는 경기도 고삼지.
첫 출조는 꽝이었지만 버스타고 한시간 가량와서 시골에서 낚시하는 기분이란...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버스가 국립묘지를 지날 때 총무아저씨의 한 말씀
"국립묘지를 지나고 있습니다. 모두 모자를 벗어 주십시오"
하여간 한 2년 동안 낚시회 따라다니면서 낚시를 신나게 했는데...
그 때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친구들중에 나처럼 낚시 환자도 몇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 밤이면 한 집에 모여 다음날 출조를 위해 동침(?)을 했다.
전화도 귀하던 시절 늦잠 자면 끝이니까...
사실 늦잠을 자서 낚시회를 따라가지 못해 울며 불며 어머니를 원망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강변에서 낚시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마 중학교 3년간은 내 낚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무렵 방배동 근처로 또 다시 이사를 갔다.
우쒸, 낚시 좀 안정적으로 할만하면 이사가고...
통금이 있는 시절 새벽 4시반까지 방배동에서 상도동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떻하나...
그렇지!!!
낚시점에서 밤을 새우면 될 것 아닌감?
3년간 출조로 친해진 낚시점 주인께서 토요일밤에 와서 가게에서 자라고 하신다.
혼자서...
무섭지만 늦잠자서 출조 못하는일은 100% 해결되었다.
그 무렵 철이 약간 든 나는 지방으로의 단독 출조를 생각하게되었다.
그렬려면 밤낚시를 해야하고 그당시 부모님에게 거의 매주 몇천원씩
출조비를 받는 것도 형편에 닿지 않고...
방법은 하나다.
걸어 다니고 간식값 쓰지말고...
지금 생각하면 눈물나는 일이었다.
처음 단독 출조는 1977년 어느 늦은 봄날 토요일 예당지였다.
집에서 용산까지 버스타고...
용산에서 예산까지 버스타고...
예산에서 예당지 (정확한 포인트명은 잘 기억이 안남. 아마 동산교 근처가 아니었나 싶다.) 까지 버스타고...
낚시회 버스타고 올때는 쉽더니 혼자오려니 왜그리 힘든지.
하여간 꿈에 그리던 예당지에 욌으니 낚시해야쥐.
그런데 단독 밤낚시 출조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나 보다.
남은 돈을 보니 올라갈 때 차비 빼고 500원 정도 남았다.
그때 기억으로 짜장면 한 그릇에 150원. 돈이 아주 부족하진 않은데...
먹는건 그렇다치고 잠은 어디서 자나...
첫 지방 출조를 충청권 밤낚시로 했으니 준비가 철저해야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언제 앞뒤 재고 행동했던가...
밤이 되니 비가 부슬부슬 온다.
우산도 없이 비닐 우의 달랑 하나...
버드나무 아래서 비를 피해보지만 춥다.
무지하게 춥다.
게다가 뒤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은 처녀귀신 치마처럼 펄럭인다.
무섭다. 무지무지 무섭다.
지금 같으면 이슬이나 한 잔하지 (아님 그 때 술을 좀 배워둘걸 그랬나?).
악몽 같은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아침 낚시를 하러 오신 분들이 내 몰골을 보고 걱정스레 물으신다.
“어디 아픈데 없냐?”
“밤 꼬박 새웠는데 입질이 없구만요.”
당당하게 대답한다. (낄낄)
그래 지금부터 낚시 시작이다!
해가 뜨고 두어시간후 수초가에 붙인 (정확한 표현으로는 “붙은”) 1.5대 찌가 움직인다.
채보니 내 힘으로 감당이 안된다.
쩔쩔매고 있는데 옆의 아저씨가 도와주신다.
50cm 급 잉어...
연이서 8치급 붕어 몇 수.
가슴이 떨린다.
바로 철수하여 집으로.
집에오니 난리가 났다.
내가 아마 밤낚시를 간다고 어머니께 확실히 말씀을 드리지 않고 집을 나갔던 것 같다.
하나뿐인 아들 사고 난줄 아시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신 어머니...
너무 죄송스럽다.
식구들에게 실컷 혼나고 저녁때 식구들에게 비장하게 선언한다.
“나 대학 갈 때 까지 낚시 끊겠습니다.”
그런데 애나 어른이나 낚시가 어디 쉽게 끊어지는 것입니까?
그 때는 진심이었지만...
사태가 진정되고 몇달 후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낚시를 사랑하고 있는 꾼입니다.
낚시를 좋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지만 어린 시절 예당지에 대한 추억이
워낙 강해서 지금도 예당지를 가장 많이 다닙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되어 낚시 다니기가 참 편해졌지만
40년전에는 차도 없고 장비도 정말 조악하고...
그래도 그시절이 그리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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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시쥬?
옛날일이 제게도 새록새록 나는군요
어릴때 왜 이사를 자주가셨는지 궁금합니다만 ^^
감사합니다
웬만한 분들은 예당지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입석으로 기차 타고 예당지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영붕님의. 한편의 드라마? 아니. 소설을. 읽고
나의. 입문기가. 생각나네요
36년전. 제가. 오토바이를. 타고 예산의. 털보낚시
가계를. 방문 했을때. 사장님꼐서 놀라시며. 서울에서. 어떻게. 왔냐며. 따듯한. 보리차을. 대접받은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옛날. 만큼은. 아니네요
입문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려요. 꾸. 벅^^^
십여년이 흘러 선배님의 글을 만납니다.
실감나는 맛갈진 글 덕분에
모처럼 옛 추억에 빠져봅니다.
고풍지에서는 엇갈렸지만
자주 좋은 글로 만나고 싶습니다.
뵈옵는 날까지 늘 건강 챙기십시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는지? ㅎㅎ
언제 함 물가에서 봅시다. ^^
어릴적 실력은 어데 가고
주당만 남아있는지.....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좋은글 잘 감상 했습니다^^
늘을 건강하시고 498하세요..
요즘 낚시하는걸 보며는 영 이런 내공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데 그래도 물가에서 뒹구는걸 보면
오랜 추억의 굴레가 물귀신되어 자넬 물가로
유혹하나 보네...ㅎ
우연찮게 이곳을 뒤적이다 오랜추억의 책갈피를
넘겨보았네...
덕분에 단출님도 물고도 반갑고...
지난번 여주서 손맛을 봤어야 했는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