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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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3

IP : 1ca5d965b1638c9 날짜 : 조회 : 8929 본문+댓글추천 : 0

/ 핸드폰으로 잠깐잠깐 쓰다 보니 놓친 게 있었나 봅니다. 글줄이 길어서 읽기가 어렵다는 말씀과 행간에 여유를 달라는 말씀이 있더군요. 모바일은 자동으로 글줄을 줄여주는데, PC에서는 아닐까요? 조정 좀 해봅니다. / 22:00 비바람 몹시 분다. 캐미 일곱 개 파도타기를 한다. 맥주 캔을 따고 이어폰을 낀다. Yuhki Kuramoto의 Lake Louise 2가 흐른다. / 비바람 몹시 불어 캐미 일곱 개가 멀미나도록 파도타기를 하는 바람에 독고다이 3은 '조행기' 보다는 '추억' 쪽의 글이 될 듯합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며, 두서없는 신변잡기를 시작합니다. / 비바람을 피해 거미 한 마리가 텐트 속으로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슨 시름 그리도 깊은가. 그물을 펼쳐 먹이를 기다리는 너의 나날이 갑자기 시들해졌는가. 무의미한 반복 같은 너의 일상이 별안간 지겨워 졌는가. 그래도 뚜벅뚜벅 멈추지 마라. 시지프스처럼 멋지게 살아내라. 나도 한때 너와 같은 거미였으니...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시들해졌다. 그것은 계기도 없이 기척도 없이 왈칵 다가와서는, 미처 갑옷을 입지 못한 내 삼십 대를 한순간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끈적끈적한 녹색 젤리 같은 그것은 내게 흐물흐물한 권태로움을 주사했다. 나는 우울해졌다. 나는 끝없이 집착하던 내 관념과의 담론을 포기했고, 팝콘 같던 내 일상과의 세론을 접었다. 나는 퀭한 눈동자의 멜랑콜리커가 되었다. 가령, 이런 거. <절망 앞에서> 잠에서 깬 나는 갈증을 느낀다. 정수된 찬물 한 컵을 벌컥이던 나는 문득 치미는 설움에 탁! 물컵을 놓는다. 나는 아직 창밖을 보지 않는다. 나는 몸을 돌려 거울을 마주 본다. 앙상한, 박제 당한 갈대 같다고 생각한 나는 나를 꿈꾸는 식물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늘 건조하다. 몸의 갈증이야 물 한 컵의 흡수로 잊을 수 있지만, 내 영혼의 목마름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외롭다, 라고 읊조리던 나는 내 목소리가 상처 입은 들개의 울음소리 같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심화시킨 나는 창밖을 보지 않고 커피 메이트 앞으로 간다. 늘 있던 커피가 한 방울도 없다는 사실이 나의 불행을 암시한다. 거즈를 갈고 물을 붓고 블루마운틴 한 스푼을 넣고 스위치를 ON 한다. 꼬르륵, 커피 메이트가 물을 소화한다. 이 층으로 오르는 실내 계단 중간쯤에 커피를 들고 앉은 나는 창밖으로 게으른 일요일의 오후가 느리게 흘러가는 걸 본다. 어디선가 하모니카의 고음처럼 아이가 울고 있다. 하늘은 무언가 잔뜩 불만으로 찌푸린 채 등을 돌렸다. 가로세로 하늘을 가르는 전깃줄에는 새 한 마리 놀고 있지 않다. 저 전깃줄은 언젠가는 나를 포박하고 채찍질을 하고 전기고문을 할 것이다, 라고 내 불안을 극대화시키던 나는 일요일 오후가 숨을 깔닥이며 죽어가는 것을 보기 위해 창가에 선다. 오후를 암살하고 해를 유배시킨 하루는 거리에 무언가를 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어둠을 가장한 절망이다. 팔짱을 끼고 담배를 씹듯이 물었던 나는, 이내 그것이 얼마나 어둠 앞에서, 절망 앞에서 부질없는 건방인가를 자인한다. 곧 나는 낙인 앞의 노예처럼 희망을 버리고, 내 목을 향해 다가오는 절망의 손을 바라본다. 그것의 손톱이 내 목을 파고들 때, 문득 너를 생각한다. 너는 어쩌면 나를 구해 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내 속에서 일어나는 분열에 혼돈한다. 석양은 이제 어둠이 되고 있다. 내 상심과 상실감, 외로움과 우울, 자신에 대한 배신감과 무기력 등은 이제 절망이 된다. 나는 키에르케고르가 되기로 한다. 나는 죽음으로 이르는 병, 절망의 1악장을 어둠 속에서 낮게 읊조린다. 나는 내가 아니고 싶다. 나는 이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 ㅡ 어느 일요일. 참으로 유치한 삼십 대였다고 자백을 못하겠다. 뭐가 그리 힘들었냐고 자책도 못하겠다. 늪이었다. 늪은 한없이 깊었다. 후회는 없지만 안타깝긴 하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늪이 아니라 딱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수렁일 뿐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생각에 빠져있던 거미가 사라졌다. 비바람 여전히 몹시 불고, 캐미 일곱 개 아직도 파도타기를 한다. 들쥐 한 마리가 발 앞을 후다닥 지나더니 물속으로 뛰어든다. 쫓기는 듯하다. / 비바람 여전히 몹시 불어 캐미 일곱 개 아직도 파도타기를 즐기는 바람에 붕어 대신 추억을 계속 낚아 봅니다. / 23:00 들개처럼 쫓길 때가 있었다. 막다른 골목, 가쁜 숨을 쉬며 절망의 벽에 머리를 박고 오열을 삼키고 있을 때 흔들리는 어깨를 잡아주던 따뜻한 손. 유키 구라모토의 루이스 호수 2. 폭풍 같은 날들이 지나고 지나간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날 아침, 외딴방의 대문에 대자보 한 장을 붙였다. <새벽에 울다> 나와 동지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애초에 희망을 꿈꾸지 않았다. 다만, 절망하지 않기 위해 싸웠다.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다. 이기거나 지지도 않았다. 그뿐이다. 하지만, 나는 우울해졌다. 다시, 혼자인 듯하다. 메마른 내게 몇몇 우연들이 왔다갔다. 일주일 째 나를 찾아왔던 회색의 남자와 해거름 속에서 카드 점을 봐주던 빨간 여자에게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권태롭고 공허하다. 잿빛 거미가 '아Q'를 가둔다. 노신이 거미줄에 묶인다. 모른 체한다. 사랑이 유치하고 희망이 천박하다. Yuhki가 있어 다행이다. 그가 나를 달랜다. 잠깐 방심한 사이, 내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회색의 그놈이 까뮈를 불렀다. 부조리하지 않냐, 고 까뮈가 내게 속삭인다. 모른다, 고 까뮈에게 말한다. 니가 가진 '타자의 눈'이 그걸 증명해, 라고 까뮈가 말한다. 의미 없다, 고 대답한다. 바로 그거야! 어때? 우리, 진지하게 '자살'에 대해 논해보자, 라고 까뮈가 유혹한다. 부조리와 자살은 논리적 필연성이 없다, 라고 버틴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고 까뮈가 우긴다. 차 문을 열고 까뮈를 끌어낸다. 가로등에 까뮈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캔 맥을 꺼낸다. ESSE One에 불을 붙이고 캔 맥을 한 모금 마신 나는 내게 뭘 원하냐, 고 까뮈를 노려보며 말한다. 담배 연기에 얼굴을 찡그린 까뮈가 내게 신을 믿느냐, 고 묻는다. 천만에, 라고 대답한다. 인간과 그들의 가설과 그들의 건축물을 믿느냐, 고 까뮈가 다그친다. 천만에, 라고 대답한다. 그럼, 너의 일상과 너의 주변과 그 모든 것의 모호함과 권태롭도록 습관적인 반복을 어쩔 거냐, 고 까뮈가 묻는다. 답이 없다, 라고 대답한다. 까뮈가 회심의 칼을 든다. 그럼, 왜 그랬냐, 고 묻는다. 희망도 아니었고 절망도 아니었어. 그건 단지 저항이었고 반항이었을 뿐이야, 라고 고백한다. 까뮈가 빈정댄다. 이 모든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방법은 반항이라고 나는 분명히 말했어. 언제나 깨어서, 명증한 것만 요구할 것. 부조리한 것은 거부할 것. 그래서 시지프스처럼 비극적이지만 멋지게 살아줄 것. 그런데, 저항한 너,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라고 까뮈가 따진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내가 뭘 원하는지. 아니, 내가 원하는 게 있는지조차도, 라고 대답한다. 그래? 그럼 죽어버려! 자살 어때? 난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니가 하면 도피야, 라고 까뮈가 씹듯이 뱉는다. 나는 울먹이기 시작한다. 까뮈에게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허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허화한데, 나를 잡아줄, 내가 잡아야 할 동아줄이란 세상에 없다는 기막히도록 암담한 새벽, 나는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고 울고 있는 것이다. 나를 울리는 것이다. 하여, 내게 아직도 기대하는 것들아. 나를 용서해라. 아니, 용서하지 말아라... ㅡ 새벽에, 피터. 찰칵! 외딴방의 대문을 닫으며 세상을 향한 마음도 닫았다. 물가에서의 한 달, 외대 일침. 수면 위에 펼쳐지는 미련과 회한과 반성과 참회의 바둑돌... 비바람 치던 새벽이 가고 물안개 피어오르던 날. 나는 지난날들을 복기하기 시작했고, 유키 구라모토는 나를 위해 Lake Louise 2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침이 밝아올 때쯤 복기가 끝났다. 나는 비로소 캐미 끝에 머물던 시선을 들어 나무와 산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무 이파리의 파란 정맥과 공룡처럼 웅크린 산의 동맥, 그리고 은갈치처럼 반짝이는 아침 바다. 나는 가슴을 열어 나무와산과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나무와 산과 바다가 아니라 '나무와산과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슴으로 바라본 나무는 산의 이끼였고, 산은 대지의 뾰루지였으며, 바다는 대지의 둠벙이었다. 글쎄, 감히 '관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것은 내 관점의 이동이었으며 내 지평의 확장이 아니었을까. 먹먹해진 가슴을 쓸고 뜨거워진 눈을 비비다 결국 울어버린 그날 아침, 거울처럼 맑은 수면에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 2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나를 그만 용서하기로 했다. 외딴방에 붙였던 대자보를 떼고 짧은 글을 썼다. <끝내자> 결국, 가시에 찔렸다. 찔리고 말았다. 그래서 손가락 아리고 가슴 저리다. 나는 낙타처럼 지쳤다. 사막처럼 피폐해졌다. 이제 그만 등에 진 짐 내리고, 무장해제하고, 선인장처럼 뿌리를 내려야겠다. 그러니 피터, 그리고 당신들, 몸을 묶은 끈끈이주걱을 자르고 이 방에서 나가자. 우리는 결국 폐쇄회로에 빠졌지만, 선악의 피안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우리, 같은 눈빛으로 삶의 근원적 비극성을 응시하던 그때를 잊지 마라. 이 굴종의 시대를 부수지 못하는 내 절망을 토닥이던 당신을 부정하지 마라. 똘레랑스도 없고 노블레스가 없으니 오블리주도 당연히 없는 이 야만의 시대에 나는 소통을 하고 싶었다. 영혼을 번식하고 정신적 생식을 하고 미의 이데아를 꿈꾸고 싶었다. 당신, 우리는 착각한 거야, 라고 빈정대지는 마라. 씨바, 진짜로 숭고하고 싶었으니까. 자, 피터, 나를 봐라. 내 눈을 바라봐라. 다시는 너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내 진정성을 믿어봐라. 미안했다. 비겁하게도 나는 늘 네게 책임을 묻기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미안타. 못나게도 후회만 하고 참회를 잊어 또 한 번 이쯤에서 돌아가야겠다. 외딴방은 내가 만든 매트릭스, 넌 그 안의 어린 왕자. 나는 가난하여 네게 장미꽃을 사주진 못했지만, 소혹성 B612호나 활화산과 휴화산을 사주진 못했지만, 통제되지 않은 내 욕망이 빚어낸 배설물 위에서도, 빌어먹을 절망이 뚫은 숱한 사유의 구멍에도 언제나 푸르렀던 피터, 니가 바로 내 바오밥 나무였다. 우리가 현실을 파라다이스로 만들 수 없음을 이제, 정직하게 인정하자. 하지만, 저항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저 좆같은 세상에게 가운뎃손가락 빳빳하게 세워주고 다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반항하자. 나는 이제 내가 만든 굴레를 벗어나 피터를 방목할 것이다. 해방된 개인들과의 자유로운 결사를 준비하는 맑스가 되든, 욕망에 충실한 카사노바가 되든 그건 피터 몫이고. 당신들도 그만 당신들의 세계로 돌아가라. 돌아갈 길이 멀지라도. 뚜벅뚜벅. - 피터 외딴방을 닫고 봄여름 꼬박 물가에 살았다. 붕어를 돌려보낼 때 옥수수 한 알을 입안에 넣어주는 버릇이 이때 생겼는데, 그 계기나 동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과 화해하면서, 그동안 봉인했던 내 안의 '장난의 방'이 열린 게 아닌가 추정해본다. 혹시 아냐고. 옥수수 한 알을 물고 돌아간 흥부의 자랑질에 탐욕스런 놀부가 덤벼들지도. 24:00 비바람이 잦아든다. 찰랑대던 수면이 잔잔해지고 캐미 일곱 개가 파도타기를 멈춘다. 건너편 수초 사이 표류하는 캐미불빛. 놈에게 납치되어 수장당했다고 믿었던 1번 찌가 떠돌고 있다. 놈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난로를 끄고 숨을 죽인다. 쉿! 누군가 왔다. 건너편, 검은 형체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작은 체구의 사내가 바위 뒤로 숨는다. 잠시 후, 사내는 바위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표류하는 1번 찌를 주시한다. 달빛 아래 영락없는 고양이다. 휙! 바람 소리와 동시에 찌가 사라진다. 사내가 긴 대로 찌를 회수한 것이다.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간결한 초식이다. 사내가 수면에 캐미 세 개를 던지고 바위 뒤로 몸을 숨긴다. 좌표는 수초 구멍과 회유로인 듯하다. 잠시 후, 사내는 바위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세 개의 찌를 주시한다. 달빛 아래 완벽한 고양이다. 그런데, 어스름 달빛 아래, 전혀 거침이 없잖아. 당신, 도대체 누구야?

3등! IP : 377736e0a346b9b
멋진 글이네요.

오랜시간 쏫아부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네요.

그리고 전문적인 공부를 하신거 같은 느낌도 많이 들고요.

이런 글들을 보면 세련되지 못한 제 글이 왜소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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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15b869628fc66b4
표현 하시는 말씀 하나 하나가

전문 글쟁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저 표현을 했을때 피터님은 어떤 감정이었을까를

유추해 보려 애써 보지만

얇은 지식, 더 박한 인생 깊이로는 가늠하기 조차 힘이 드네요.

몇 번 더 읽어 보며 피터님의 흔적을 따라 가 보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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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0054dc8a149c5bf
잘 읽었습니다.
저는 드릴 것이 없어 염치없지만
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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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94332b6d709cb65
뒤 늦게 뒤척이다 글을 접하게 됩니다.
이해할듯 하면서도 이내몸의 미천한 지식은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만....

날개가 꺾여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지친 삶이 보여 진부하기만 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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