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권박사가 모처의 전화를 다시 받고 안내인을
통해 도착한 곳은 책상하나와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바닷가에 인접한 낡은 컨테이너박스 였다.
그곳엔 두 명의 남자가 미리 대기 하고있는데 복장이나 말투,걸음걸이를 통해서 경호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박사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기 전에 여쭐 일은 배를 타고
장시간 섬으로 가야 합니다. 만약 배멀미를 하시면 여기 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동 보안을 위해서 눈을 가리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아니 무슨 절차가 이리 까다로운 겁니까!! 간곡한 요청이 있어 약속을 잡긴 잡았는데 이렇게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두 사람 중에 덩치가 다부지고 인상이 날카로운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친절히 뫼셔 오라는 명령만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가시면 아시게 됩니다.
보안이 필요한 일이라 이동하는 동안에 조금 불편할 수 있는데 도착시 까지는 유지해 주셔야 겠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권박사에 부탁하는 동안
밖에는 막 도착한 자동차의 시동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곧바로 권박사의 얼굴에 복면을 씌우고
자동차 뒷자석에 올라 박사의 양 옆에 나란히 앉았다.
차는 20분 가량 달렸고 이름을 알수 없는 선착장 앞에 멈췄다. 자동차가 도착하자 마자
모트보트 한 대가 나타났고 그 즉시 권박사와 두 사람을 싣고 섬을 향해 속도를 높혔다.
보트가 섬에 도착한 것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그제서야 그들은 권박사의 얼굴에 덮어씌운 검은 복면을
벗겨 주었다.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 였다.
두 사람은 권박사를 데리고 섬의 동편 깎아지른
기암절벽을 지나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소나무 숲 안에 빈 공터가 있었는데 300평 가량 쯤 되고 금잔디로 깔끔하게 마무리 되어 있어서 단순한 섬이 아니라 오래 공을 들인 흔적이라고 권박사는 생각했다.
공터의 중심부에 놓인 바위 앞에서 두 사람중 한 사람이 양복 상의에서 리모컨을 꺼내 누르자 바위가 우르르 옆으로 미끄러지며
육중한 철문이 등장했고 그 아래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긴 복도가 나왔고 통로 끝에 엘리베이트가 있었다.
엘리베이트의 문이 열리고 권박사 일행을 태운 엘리베이트는 수십 미터의 지하로 내려 가고 있었다. 지하 5층, 10층 어느새 버튼은
지하 25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요새였다.
도착을 알리는 알림음에 따라 내리자 긴 로비가 나타났는데 할로겐 조명이 천장에서 열을 지어
대리석 바닥을 비추고 청동으로 만든
동상과 좌우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 유니크하고 엔틱한 문양이 새겨진 화분들에는 공기정화 식물인 안스리움과 긴 꽃대위에 하얀 꽃망울을 활짝 펼친 스파트필름, 각종 야자수와 동양란, 행운목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 실내장식과 인터리어에 꽤나 정성을 들인 것 같았다. 방문자의 혼을 빼놓는 로비를 지나자 십자로 교차된 복도가 이어졌고 그 끝에 카드인식과 지문인식을 해야만 열리는 문이 나왔다.
권박사를 인솔한 두 사람은 카드 체크와 지문인식을 해서 문을 열고는 권박사에게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들어가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양쪽으로 뚫린 복도를 따라 각자 이동했다.
좌우 벽면이 전면 유리로 된 방에는
대형 스크린이 정면에 부착되어 있고 특별한 실내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화이트 홀이었다.
권박사가 방에 들어오자 동시에 스크린이 켜졌고 그를 초대한 인물로 보이는 남자가 화면
에 나타났다.
"잘 오셨습니다. 권박사님!!! 박사님께서 계신 이 곳은 '별장'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지금 서계신 곳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보십시오
바닥이 인식프로그램이 깔려 버튼 역할을 하니까 시뮬레이션이 뜹니다. 대충 이곳 별장이 어떤 곳인지 보여 줄 겁니다.차분히 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화면 속 인물의 지시대로 권박사가 발자국을 옮기자 가로세로 30cm의 보라색
조명이 바닥에서 깜박거렸다. 이윽고
권박사 주위를 빙둘러 싼 시뮬레이션이 화려하게 나타났다.
" 손가락으로 터치 한 번으로 이 곳 시설에
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질 겁니다. 지금 무척이나 혼란스러우실테지만 잠시 구경하고 계십시오 ".
시뮬레이션을 손가락으로 터치하자 내부 시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3차원 영상이
나타났고 연구실과 실험실 뿐만 아니라
대공미사일과 아파치헬기와 대전차, 제트기등이
든 격납고의 풍경이 주루룩 나열되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비밀 군사시설인 것은 대충 짐작이 가는데 엄청난 첨단 장비들과 전자 시스템에 그저 놀랍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어안이 벙벙하군요."
" ㅎ ㅎ그렇게 놀랄만한 곳은 못됩니다. 이곳은 작은 벙커수준이지요. 그만 놀라시고 이제 뒤를 돌아 보세요 . 박사님 뒤에 제가 서 있으니까요".
모니터 화면의 인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를
돌아본 권박사는 화면 속의 인물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권박사에게 악수를 청했기에 또 한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감청색의 깔끔한 슈트차림에 대략 마흔 중반 가량되보였는데 자신을 '별장 안내자' 라고 소개했다. 그가 건낸 명함엔 대양이코노미 기획실장 '김명진'이라고 찍혀 있었지만 일개 기업체가 섬 전체를 방공호와 군수시설로 요새화 되어 있는 가공할 아지트를 구축한다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뻔한 속임수 였다.
" 박사님 또 놀라고 계시는군요 , 이건 그저 사무적인 명함일 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지켜야 할 수칙들이 많습니다.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물론 저는 박사님이 알고 오신
'그 분'은 아닙니다. 이곳을 안내하고 모시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정중히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음 먼저 박사님의 전공이기도 한 생체 공학과 유전 공학의 집합체
연구실로 가 보겠습니다. 그전에 칵테일 부터
한 잔 합시다".
별장 안내자 명진이 손에 든 리모컨을 누르자 역시 바닥으로 부터 각종 와인과 양주로 세팅된 칵테일 바가 나타났고 권박사는 간단히 와인만 한 잔 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손님 접대실 구경은 이쯤하고 가실가요 !"
별장 안내자 명진이 또 다시 리모컨을 콘트롤
하자 대형 스크린이 걸린 벽면 아래가 열리고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나타났다. 권박사에겐
모든 것이 의문이었지만 모든 것이 또 놀라운
일이었다. 바다 한 가운데 무인도에 숨겨져 있는 비밀 요새, 그리고 자신을 별장안내자
라고 소개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와 가공할
시설들, 과연 이 곳은 어떤 크나큰 음모와 계락이 숨겨져 있는 곳일까!
권박사는 그를 따라 지하로 통한 계단을
내려 가면서 머리 속이 한 없이 복잡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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