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5학년쯤인걸로 기억된다
그 당시 대구의 변두리동네인 산격동에 살았었고
십분거리에 금호강이 있었으므로 아버지와 밤낚시를 자주 다녔다
아버지와 낚시를 갈때는 항상 술은 안마시는 조건으로 따라 나섰는데
왜냐하면 낚시만가면 아버지는 낚시보단 막걸리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날이면 꼭 옆의 아저씨들을 불러서 노래를 시켰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때 나의 18번 곡은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마주보면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똑딱똑딱 흐르는시간~
아직도 노래가서를 2절까지 거의 외우는거보면
그당시에 참 많이도 불렀나보다
어쨋든 그날도 술안마시겠단 약속을받고
따라나섰다 약속이 안지켜지는 날이 더 많았음에도
밤낚시의 매력에 빠진 난 믿고 가는수 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에 603번 버스를 타고 무태교를 건너 동변동인가 그쯔음 내려 택시를 타고
다시 십분여를 들어가면 금호강 상류쯤 되는곳에 꽃밭낚시터라고 있었는데
그곳이 주 출조지였다 어른들은 꽃빤스라고 불렀다
그 꽃밭낚시터라는 간판을 단곳에서 라면도 팔고 낚시용품 및 간식거리를 팔았었고
그집 아들내미는 정태라는 이름의 학교 친구였는데 그렇게 똑똑한친구는 아니었던걸로 기억된다
입질이 없을때는 그집뒷마당에 농구골대가 있었기에 농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마음에 드는 곳에 받침대를 꽂고 낚시대를 폈다
마음은 급하고 빨리 손맛을 보고싶었기 때문에 완전 무아지경으로 집중해서 세팅을 하였는데
어느새 아버지는 옆자리 아저씨들의 술판에 합석하고 있었다
나는 막걸리 병을 세어 보았는데 한병 두병 세병...
아 저정도 양이면 위험한데..
아마 두병이상째 되면 한곡을 해야 할 분위기였고
역시나 사랑의불시착을 한곡조 뽑았다
날은 저물었고 500원짜리 콩떡밥을 개어 달고 낚시를 했다
그때 당시에 물에 개면 빨간색으로 변하는 떡밥도 나는 좋아했다
지렁이에는 메기도 가끔 올라오고 씨알이 크지는 않았지만 참 재밌는 낚시를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 너무 많이 변해버린 ..
아직도 꽃밭낚시터가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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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꽃밭인지..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중학교때 어쩌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자전거 타고 도시락 배달도 했었네요
그때는 버스번호가 88번인가..89번인가...그랬습니다 기억이 잘..
릴낚시로 빨간색 큰 고무다라이에 가득차게 잉어며 붕어를 잡아오셨지요 동네에 이래저래 나눠주고
나머지는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했는데...과학시간에 배운 등뼈굽은 붕어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