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오님의 글을 읽고나서..
비슷한 일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저도 시골(의성,사곡) 출신이라 어릴적 소맥이러 가서 간식거리는 없지요
배는 고프지요 ㅎㅎㅎ
산중턱에 있는 친구네 감밭에 감홍시 주워먹으러 갔습니다
그때는 비닐봉지가 있습니까 뭐 마땅히 담아올때가 마땅찮을 시절 ㅎㅎ
해봐야 보재기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난닝구 속에다 빨간홍시 주워 담았죠 ㅎㅎ
어느새 칭구네 할배 에이 요놈들아 고함을 칩니다..
혼비백산하고 나 살려라 도망칠수 밖에요..
그래도 뛰면서 홍실 흘릴까봐 난닝구 아랫부분은 움켜쥐고 건너편 산으로 ..
일정거리가 지나 이젠 되었다 싶을때 난닝구 속은 그야말로 감범벅이었습니다..
함 생각해보시소 감홍시 안고 냅다 뛰었으니..
그래도 배고파서 서로 웃으면서 손을 넣어 한웅큼 입에 넣으면서 배고픔을 달랬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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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습니다
힘겨웠던 시절이지만
지금에와서 돌이켜보면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추억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겠지만
옛추억도 간직해야겠지요
천연 감물염색속옷을 애용하셨네요 ^^
어린시절에 추억 잘읽고 갑니다~
감홍시가 먹고싶네요~
아직은 떫은 감을 줏어 소금을 넣은 단지에 삭혀 먹기도하고,
학교갔다 와서는 가방은 내 몰라라 던져 버리고 오르던 감나무.
떨어진 홍시를 줏어 흙을 털고는 빨아먹던 그 단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단감나무가 있는 친구넘은 그때 만큼은 대장으로 대접받았습니다.
곶감이 되기도 전에 한알 한알 빼어 먹고는 꾸중 많이 들었죠!
나! 돌아갈래.
옛날 이바구 하면 서리 해먹던 생각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어머님 & 아버님이 고사리 꺽어 오면 100 원 줄께... 하면 그냥 산에 달려가 30분도 안되어
검은 봉지 1개 꽉 채워 뛰어 내려 오곤 했는데... 낚시 가서 어지간한 산 다 뒤져 봐도 고사리 밭이 보이질 않네요..^^
다음엔 물가에서 뵙게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까지 있다가
아들놈 공부시킨다고 대구 이모집으로
유학왔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는 고추친구가 없네요
지금도 이쁜 소류지가 많더이다
지금 딸친구덕에 감홍씨 배터지게
묵고 있습니다..어린시절 묵고튀기 딱한번
했네요..주인아저씨 찐빵.만두 잘묵었심더
고무신 몇년 신다가 운동화로 ..괴기좀 씹고 다녔습니다 .ㅋㅋㅋ
남의꺼 서리 해서 먹고했죠
60년대생이면 다 추억 있을겁니다 ㅎㅎㅎ
그시절 다시 돌아가고픕니다
도망가다 똥구덩이에 많이 빠졌습니다...
도망가는 길목에는 왠 똥구더이가 그리 많은지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