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자유게시판

종신토록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라...

IP : 51f39fb187eeddd 날짜 : 조회 : 2928 본문+댓글추천 : 0

오늘 문득 아래글들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리... 病妻寄敝裙이라!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를 보내 왔네, 千里託心素라! 천리 먼 곳에서 마음을 담아 보냈구나. 歲久紅已褪나 오랜 세월에 붉은 빛은 바랬는데, 蒼然念衰暮라! 늙은 내 모습 같아 처량하구나! 裁成小書帖하니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드니, 聊寫戒子句라! 자식들에게 줄 글귀 두서없이 몇 자 적었네. 庶幾念貳親하라! 아! 너희들 부모를 잊지 말렴! 終身䥴肺腑하라! 종신토록 가슴 속에 새기고 살아라 종신토록 가슴 속에 새기고 살아라.......

1등! IP : a29ff420ce3cf8a
모르는 한자 너무 많아요~

기왕이면 한글 토씨도 쫌 달아주시우~~
추천 0

3등! IP : 238f52ae149cecf
못안에달님....
넘 어려워요... 뭔놈의 한자가.. 모르는게 더 많아요.ㅋㅋ
한글로 바꿔주심이 어떠신지요..
저같이 아직 20대 조사들은 한문 잘모르잔아요..^^
부탁드려요.~~~
추천 0

IP : 99d25cabde3e717
월하님 동낚바왕님 다 아시면서 그러시죠?

선배 낚시꾼 중에 한사람인 다산선생은
모시던 개혁적인 왕은 갑자기 죽고 자신이 설계한 모든 개혁은 실패하고
갑자기 죄인으로 몰려 유배를 떠납니다.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내고 아무것도 줄것 없이 늙은 죄인입장의 아버지는
병든아내가 보내온 낡은치마를 재단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냅니다.
윗글이 바로 그 서첩의 발문입니다.

이 서첩에 너무나도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 있지요.

"병든아내의 빛바랜 치마에 드는 노을빛 서첩"

요새는 저만한 시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얼마전에 라디오 시시고전에서도 들었는데...

하피첩.

못달님때문에 이걸 다시 생각해 볼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추천 0

IP : 622e6f54c20c5be
읽을줄아는 한자라곤

신수향,수파,옥수,명파,청강호,명작... 등등등 낚시대 이름하고 내이름이 전부이니... 패스 ㅠㅠ
추천 0

IP : ce3f3b00f5a1ef7
생각하게하는 글귀..
가을이긴 가을인가 봄니다
못달선배님..
동출...햐~참날짜 안맞네요^^;;;
추천 0

IP : 2da2cde05c10ac9
이냥반도 이자는 도통해가능거시여~

울 월척지에 여럿 이써

모따루
붕어우리
그리고....
추천 0

IP : a29ff420ce3cf8a
파트린느님 진짜 모르는 한자가 많아요~

저거 읽을려면 한자사전 동원해야되는데..

못달님 한글토씨 안달아주면

운영자에게 신고할껴~~
추천 0

IP : f19079e206d1799
못달님 항상 새겨넣을글 감사하네요

사람이 어떤한말이나 글하나로

나의뒤를 돌아보게한다면

그게큰 스승이겠지요

파트린느님은 이미 동방의서첩은 다통달허셨나봐유

조석차가 크네요

다들 건강들 잘챙기세요~~
추천 0

IP : 99d25cabde3e717
아범님. 아구... 다산초당 가서 설명들은거 우연히 아는거 나온겁니다.
알긴 제주제에 쥐뿔을 알것어요?
글구 월하님 솔직히 누가 요새 저런 어려운 한자를 읽어요?
인터넷에 다 있는데...

한자는 읽지 마시고 한자 옆에 우리말로 달아논건 그거 기억하믄 되지 뭐.
추천 0

IP : a29ff420ce3cf8a
파트린느님 위 댓글을 다시 자세히 보니

다산선생의 서첩이었군요

원글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습니다

많이 부끄럽네요 제 자신이..
추천 0

IP : 51f39fb187eeddd
지독히도 강인하여 부러질줄 알면서도

그뜻을 굽힐줄 모르시는

이시대 초초강력 울트라 학자 이시자

낚시계초초초선배이신 다산 정약용....



치마폭에 담은 사랑에다

마마로 잃은 자식을 슬퍼하며



강진에 귀양을 온 정약용은 1808년에 거처를 다산(茶山)으로 옮기고, 이 지역에 차가 많이 난다고해 호를 ‘다산’이라고 짓고 초가지붕을 엮어서 공부방을 만들고, 이름을 다산초당(茶山草堂)이라 붙였다.



물을 끌어들여 인공폭포수를 만들고, 연못을 파고, 채소도 심으면서 그럭저럭 은자의 생활을 즐겼다. 초당의 바위 절벽에는 정석(丁石)이라는 두 자를 새겨 징표로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텃밭을 가꾸며, 학문에 전념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전론’ ‘탕론’ ‘원목(原牧)’ 등을 저술하여 혁명적인 토지정책을 제시하고, 유배가 풀린 후 고향인 마현(지금의 양수리)으로 돌아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名著를 담은 ‘여유당전서’ 500여권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유배의 경험 덕분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 1836)의 ‘하피첩(霞帔帖) 즉 하피는 본래 조선시대 왕실 비(妃)나 빈(嬪)들이 입던 옷을 뜻하는데, 정약용은 아내 홍씨가 보낸 치마가 붉은색이라 하피(붉은 노을색 옷)라고 했다고 한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편지에 담아 전달했다.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피첩’이다. 즉 부인이 치마를 강진에 있던 남편에게 보내고, 다산이 이를 잘라 하피첩을 만들었던 것이다.



즉 ‘하피첩에 제(題)함’이란 글에는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이 든 아내가 헌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적에 가져온 훈염(纁袡·시집갈 때 입는 활옷)으로서 붉은빛이 담황색으로 바래서 서첩으로 쓰기에 알맞았는데 이를 재단해 조그만 첩을 만들어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전해 준 것이다.



다음 날에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는 곧 ‘다홍치마’의 전용된 말이다”라고 적어 하피첩을 만든 사연을 기록하고 있다.


유배 시절인 1810년의 어느 날 정약용의 풍산 홍씨 아내는 시집올 때 입었던 치마폭을 인편으로 보내왔다. 정약용이 15세 때 혼인을 했으니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치마의 겉모습은 이제 더 이상 치마가 아니라 다섯 폭의 천이 되었고, 다홍색의 짙은 색깔도 빛이 바랜 황색으로 변해 버렸다.



정약용은 옛적 곱고 풋풋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치마폭에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훗날 부모를 기억하라는 뜻을 상징물과 함께 보낸 것이다. 3년이 지난 1813년 다시 이 치마폭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시집가는 외동딸을 위해 매화나무에 멧새 두 마리를 그려 넣고(梅鳥圖) 시 한 수를 써넣었다.



사뿐사뿐 새가 날아와

우리 뜨락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서 쉬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어라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

라는 시를 써서 딸이 시집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담은 것이다.


정약용은 홍씨와의 사이에서 6남3녀를 낳았지만 2남1녀 3명만 살아남고 4남2녀 5명은 조선시대를 휩쓴 최악의 전염병인 ‘마마’에 걸려 만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훗날 정약용이 종두법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여 ‘마과회통’이라는 의학서를 편찬한 데에는 자식을 잃은 슬픔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정약용은 “내 어린 딸은 임자년(1792) 2월 27일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 순하게 나와 제 엄마에게 효도하였으므로 처음에는 ‘효순’이라고 불렀다. …태어난 지 24개월 만에 마마를 앓았다. 제대로 곪지를 않고 까만 점이 되며 설사를 하더니 하루 만에 숨을 거두었다. 모습이 단정하고 예뻤는데 병이 들자 까맣게 되어 타서 숯처럼 되었다.… 이제 또 너를 여기에 묻는구나. 오빠의 무덤 곁에 둔 것은 서로 의지해 지냈으면 해서이다”라며 마마로 딸을 잃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1801년 9월 3일 첫 유배지인 장기에서 “날짜를 헤아려 보니 82일 만에 너의 편지를 받았구나. 그동안 턱 밑에 준치 가시고기 같은 흰 수염이 7, 8개가 생겼다. 네 어머니가 병이 날 줄은 짐작하고 있었다. 큰며느리도 학질을 앓은 뒤라 모습이 더욱 초췌하겠구나. 생각하면 견디기 어렵다. 더욱이 신지도에 계신 둘째형님(정약전)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



내가 밤낮으로 축원하는 것은 오로지 문아(둘째아들 학유)가 독서하는 것뿐이다. 문아가 선비의 마음자세를 갖춘다면 내가 다시 무슨 한이 있겠느냐.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책을 읽어서 아비의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라. 팔이 시큰거려 이만 줄인다”고 하며 아들이 학문과 독서에 정진할 것을 거듭 당부하는 편지를 보냈다.



1802년에는 ‘우리 농이’라는 글에서 “농(農)이는 내가 곡산에 있을 때 잉태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은데도 나는 살아있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나은데도 너는 죽었다. …네 모습은 깎아 놓은 듯 빼어났다. 코 왼쪽에 조그만 검은 점이 있고 웃을 때면 양쪽 송곳니가 드러나곤 하였다. 아아, 네 얼굴이 생각이 나 사실대로 말한다”고 하여 정약용은 막내아들을 잃은 슬픔을 편지에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부인의 치마폭을 잘라 딸과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에는, 늘 가족을 그리워하고,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아픔을 표현한 정약용의 남편과 아비로서 인간적인 모습이 물씬 풍겨난다. 이 문집에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만 30통 가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천 0

IP : 377736e0a346b9b
하피첩 문헌에만 있는 책이 실제 발견되었네요
tv 진품명품에서 나왔는데,

폐지 수집하는 할머니가 수레에 실고 오신것을 한분에 예사롭지 않은 물건으로 보고
몇푼드리고 샀는데, 이것이 하피첩이었네요. 보존상태도 좋고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평가 위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진품명품 평가위원을 한 것이
이런날을 맞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감정가는 2억인가? 우리나라 문화재는 가격이 너무 싼거 같어요.
추천 0

IP : 51f39fb187eeddd
월하님 만 보이소

病妻奇폐裙 (병처기폐군) 병든 아내가 헤진 치마를 부쳐오니,

병 병, 아내 처, 부칠 기, 헤질 폐, 치마 군 (폐 : 비단 폐幣에 수건 건巾이 빠진 글자)

千里託心素 (천리탁심소) 천리나 되는 먼길로 애틋한 마음이 담겼구나.

일천 천, 거리 리, 맡길 탁, 마음 심, 정성 소(향할 소)

歲久紅已褪(세구홍이퇴) 흘러간 세월에 붉은 빛 이미 바래서,

해 세, 오랠 구, 붉을 홍, 이미 이, 바랠 퇴

창然念衰暮(창연염쇠모) 만년에 슬픈 생각이 가득하네.

슬플 창(마음 심心+길 장長), 그럴 연, 생각 염, 쇠할 쇠, 저물 모

裁成小書帖(재성소서첩) 마름질을 해 작은 서첩을 만들어,

마를 재, 이룰 성, 작을 소, 책 서, 두루마리 첩

聊寫戒子句(료사계자구) 부족하나마 아들을 깨우치는 글을 (이 서첩에) 적는다.

애오라지 료, 베낄 사, 경계할 계, 아들 자, 글귀 구

庶幾念二親(서기염이친) 부디 어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

여러 서, 살필 기, 생각할 염, 두 이, 친할 친(이친=양친)

終身鐫肺腑(종신전폐부) 평생토록 마음에 새겨 두려무나.

마칠 종, 몸 신, 새길 전, 허파 폐, 장부(오장육부) 부(폐부=마음)
추천 0

IP : a29ff420ce3cf8a
으이구~

"마칠 종"까지는 말고 걍 "종" 까지만 쓰면 되는디~

암튼 고맙습니다 ^^
추천 0

IP : f25ec875c26e1f5
조은글은 분명이 맞는데~~~

아이구~머리야 머리가 와이래 아푸노~

야튼 조은글 대단히 감사합니더~
추천 0

IP : f86f9958619c9c0
사전찾아보다가 창내렸다 올렸다하니 이미 듯이 댓글로,,,,ㅜ.ㅡㅋㅋ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