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숨돌릴 틈도 없이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함께 탈출하는 동안에
수석연구원 지석의 눈을 통해서
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깨달았다.
더불어 그에게서 나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와 정체불명의 그들이 생체실험을 원하고
권박사에게 닥친 그간의 일들을 대충이나마
듣게 되었고 현재 진행중인 우리의 도피를
위해서라도 묘안을 짜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요.
지석씨에겐 아버지 같은 권박사님이
계시고 저에겐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
이건 우리의 큰 약점인데 과연 숨을
장소가 있기나 할까요?
"그들의 노림수 역시 정우씨 말대로
이뤄질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연구소를 나왔고 그들로 부터 우리의
빼앗긴 시간을 찾았다는 겁니다.
잠깐 혹은 영원한 자유가 될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걱정은
나중에 하자는 겁니다.
연구소에 틀어박혀 지낸 저는
정우씨 보다 세상을 더 모릅니다.
찾아 갈만한 곳도 없고요
정우씨 말대로 그들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것 역시 잘 압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잖아요".
수석연구원 지석은 진심을 다해 내게 마음을
전하고 나를 설득했다.
"불안감을 버릴 수 없습니다. 변이의
과정을 통해 내 몸 속에 들어온 괴물은
경고를 보내왔습니다.
본능적으로 저의 생체리듬은
동물적인 감각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밤마다 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꿈은
제 행동을 멈추게 하는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 정우씨 !! 권박사님과 저는 생명윤리를 최선의 가치로 믿고 있습니다. 한 개인에게 행해지는 불의와 밖으로 아무것도 노출하지 않는 얼굴 없는 정체 불명의 그들이 정우씨의 삶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희생을 강요하는데
사람을 살리고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매진해온 권박사님과 저에게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을 주었습니다. 저는 권박사님을 존경하고 박사님의 뜻에 따라 만나게 된 정우씨를 또한 존중합니다.
미래의 예시를 받는 꿈이라면
그 반대편의 돌파구 또한 분명히 있을 겁니다.
입구는 언제나 돌아나오는 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석연구원 지석의 설득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지만 불안과 함께 엄습하는기운이
나를 휘감는 것을 떨치지는 못했다.
그의 말처럼 시작된 입구의 끝엔 분명한 출구가 있는 법이지만 그것은 다음 번에
넘어야 할 새로운 입구와 터널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차마 실망시킬 수 없었다.
"가요! 정우씨! 지금부터 미끼를 흩뜨려 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옷가지와 음료수와 간단한 비상식량을 위해 X마트 트레이더스로 갑니다.
그들이 백열등이라면 우리는 불나방입니다.
불에 타죽느냐 황홀한 날개짓으로 훨훨 날아가느냐는 이 선택지를 지고 있는 그들이
아니라 방점을 찍는 우리 입니다. 갑시다".
수석 연구원 지석은 137M의 월평동 산성에
도주에 이용한 자신의 차를 유기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예상한 IC가 아니었고 오히려 유흥가와
번화가로 밀집지역인 이곳에서 적과의 난타전을 치루는게 훨씬 유리한 거라 보았다.
월평동 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계곡과 산정을 따라 성벽을 쌓는 방식)이었고 길이는 710M 가량이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에 자동차를 유기하는
것은 첫 번째 미끼였고 두 번째는 당연히
대형마트라는 미끼면 족했다.
X마트 트레이더스는 창고형 마트 였는데 B1 식품관에서 음료수와 비상식량을 카트에 채웠고 생활용품과 캠핑관에서 쇼핑을 했다.
그것은 의도적이었다.
이미 안전지대로 벗어나야 하는 자들이 여유롭게 쇼핑을 한다는 것은 상식밖의 동선이 될 것이고 이러한 미끼를 그들이 덥썩 물어 준다면 그것이 탈출을 위한 사각지대가
되는 것이다. 충분히 근접해 있는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은 빛의 방향이 투과하고 남은 자투리에 어둠과 함께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보안카메라를 통해 경비요원들이 연락을 받고
출입통제와 그들의 경찰병력이 달려왔을 땐
수석연구원 지석과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들은 보기 좋게 헛탕을 쳤으며
수석연구원 지석과 내가 남겨 놓은,
에스컬레이트 타고 오르 내리기, 애견 샵에서
강아지를 쓰다듬기, 캠핑관의 텐트 살피기,
생활 용품관에서 방대하게 쌓인 제품 중
특정제품을 밀어놓는 등을 무엇을 숨기거나 비밀스러운 표식행위라고 믿어 집중하여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구입한 옷을 갈아 입고
마스크와 모자로 가린 채 수석연구원 지석과 나는 물품창고를 통해 X마트 트레이더스를 나와
번화가의 사람들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젠 근처의 MTB 매장에 들러 자전거를
구입할 겁니다. 골목의 CCTV를 확인하고
마트에서 산 옷을 2차로 갈아입고 그 자전거와
옷은 산행코스를 떠나는 팀과 섞여 마지막 코스
에서 바꿀겁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계룡산 입니다".
나는 수석 연구원 지석이 수립한 계획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가 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인지, 머리 회전이 초스피드로
돌아가는 천재인지를 실감했다.
그는 스스로를 연구에 매달려 살아온 바이러스 덕후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바깥 세상에
대한 익숙한 지리적 위치와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나의 아둔함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유달리 자전거 코스가 많은 대전의
지리적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도주로 였다.
아내와 딸과 함께 캠핑을 위해 드라이빙 코스로
천장골과 남매탑, 삼불봉과 관음봉, 은선폭포를 따라 여름휴가를 보낸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난 동학사,
다른 이유로 마티고개와 갑사를 넘어 목적지
신원사에 도착하는 것으로 수석연구원 지석은
내게 일정을 알렸다.
도주로라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과학자인 그도 용의 전설을 믿는 것일까!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는 계룡산,
공주와 대전 논산의 트라이앵글을 잇는 중심부에 계룡산은 있었고 산의 정기를 받고자하는 한때 토속신앙인들의 성지가 바로 계룡산이었다.
어쩌면 수석연구원 지석 또한 계룡산을 통해
영감을 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가 전설이나 정감록을 믿었는지에 대해 돌이켜 본다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변란을 피한다는 풍수지리적 명당, 계룡산의 전설은
들어봤음에 틀림없고 그 목적지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운명적인 장소로 남았다.
신원사 대웅전 옆에는 600년이나 묵은 배롱나무가 만개한 분홍꽃으로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절은 백팔번뇌의 인간사 고락을 치유할 수
있는 단아함과 절제의 미덕을 가졌다.
속세로 부터 욕심과 괴로움과 슬픔을 안고 온 이방인에게도 넉넉한 품을 열어주었다.
수석연구원 지석은 주지스님을 만나 합창하고
배롱나무의 옹이 속에 무언가를 감췄다.
나는 그가 꼭꼭 포장하여 감춘 것이 나에 대한
모든 자료가 든 USB라는 것을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만개한 배롱나무의 분홍꽃을 보니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현기증에 나무를 똑바로 쳐다 보지 못했다.
"몸이 불편해 보입니다. 정우씨 , 힘들게
이곳까지 왔지만 여기도 곧 떠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 버티고 온것 , 성치 않은 몸으로
꿋꿋이 따라와준 것 만으로 감사합니다.
이곳 주지스님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연구소 비번인 날에
가끔 들리곤 했더랬죠".
"생명을 다루는 일은 불교의 자비와 무소유를
닮았습니다. 과학자인 저는 환생을 믿지
않지만 깊은 산 속 절에 오면 제 전생의 문이
열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업보라는 것이 전생의 잘못으로 인해 영겁의
시간을 떠도는 것이라 했습니다. 유한한 물질이
무한한 영속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덕은 바로 생명에 대한 자비입니다.
살생을 멀리하는 것이죠".
수석연구원의 지석이 자신의 명징한 과학적 지식과 종교적인 진리를 결부시켜 말하는
것이 새삼 가슴 깊이 내게도 새겨진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또렷하던 말소리가 희미해 지며 눈 앞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배롱나무의 꽃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갑판 위에서 긴 칼을 뽑아 요괴의
목을 단칼에 쳐 버렸다.
검붉은 피가 요괴의 목으로 부터 나의 전신에
뿜어졌고 돛대 역시 붉게 물들었다.
재물이 된 처녀, 그 낭자를 구하며 시작된
우리의 사랑은 마을에 세 개의 목을 가진 요괴가
공물로 숫처녀를 매년 원했고
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검객이 되어야 했다.
요괴의 목 둘을 잘랐지만 나머지 하나의 목을
자르지 못해 요괴를 처단하기 위해 낭자에게
'바다로 가노라 만약 요괴를 처단하지 못하면
붉은 깃발을 달 것이고 요괴를 죽인다면 흰 깃발을 달고 오게소'
100일을 기도하며 기다린 낭자 앞에 온통
붉은 뱃전. 그렇게 낭자는 은장도를 꺼내어
자결하고 말았다.
대성통곡을 하며 낭자를 묻은 자리에서 핀 붉은 백일홍,
혼미해지고 가물거리는 눈동자에 배롱나무의
가지가 이내 거대한 구렁이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세 개의 머리와 여 섯 개의 발광체의
붉은 눈이 혀를 낼름거리며 내 몸을 칭칭 감았고
머리부터 나를 삼키려 하였다.
옆으로는 수석 연구원 지석이 보였는데 내뺨을
두드리며 발작이 일어난 나를 깨우고 있었다.
"정우씨, 정우씨 정신차리세요!!!
수석연구원 지석이 나를 흔드는 것과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구렁이가 교차 하여 또 다른
유체이탈한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나의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허덕이고 있는
나의 응급상황을 지켜본 수석연구원 지석은
고개를 젖어 혀가 말리지 않도록 기도를 확보하고 흉부를 압박하여 귀를 대고
숨소리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옆에서 보는데 갑자기 쓰러져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진짜 정우씨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발작이 일어나 응급처치를 해야 했어요".
"괴물이, 머리가 셋이나 달린 구렁이가.....".
나는 말을 더듬대며 끝맺지 못했다.
"호흡이 안 돌아왔음 하마트면 키스할 뿐
했습니다. 원!! 괴물이라니요. 괴물을
보신 겁니까? 이 나무에 이무기의 전설이
있기는 하지만.......정말 그 전설의 주인공을
만났다고요!! 에이! 피곤하고 경황이 없고
발작이 일어나 헛것을 본 것이겠죠".
수석연구원 지석은 끝내 내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전생의 업보와 현생의 인연이 분명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구판장 할머니가 말한 순결한 영혼을 구하기 전에는 내 운명 속에 꽈리를 튼 괴물은 나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내 엉덩이의 낙인은 전생의 업을 계속적으로 연장시키려는 저수지 괴물의 술수이자 구판장 할머니가 던져 놓은 미끼라는 생각이 그때 문득 드는 거였다.
우리 두 사람을 시시각각으로 쫓으며 신원사
경내에까지 접근한 추적자의 검은 그림자가
달빛에 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던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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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어디로 향하고 계신당가요~~~~~??
발길이 궁굼 합니당~~^^
the end?
거예요^^
아직 미끼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선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제 머리 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네요 ㅋ